해방이후 좌우투쟁의 부수적인 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서 민족해방운동에 헌신한 지도자들이 발붙일 곳을 잃어버리고 정치의 주도권은 일제하 구 관리와 법관들의 수중에 들어가게 되었으며, 민주당의 중심세력은 이런 인사들로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정치는 현실이라는 구실을 내세우
1945년 8월 15일 일제로부터 해방된 시점에서 우리 민족에게 주어진 과제는 식민지 잔재를 청산, 극복해야 한다는 것과 다가오는 냉전논리, 분단논리에 대해 우리민족이 자율적으로 대처함으로써 통일된 민족국가를 수립하여야 하는 것이었다.
해방직후의 정치세력으로는 ①여운형을 중심으로 한 사
세력의 중심.
▶ 1945년 10월 16일 이승만의 귀국 : 독촉중앙협의회--> 독촉국민회
▶ 임정세력 귀국 : 개인자격. 1945년 11월.
- 한독당(한국독립당)을 중심으로 임시정부 법통론 주장.
▶ 중도세력(중도우파) : 안재홍, 김규식등. 양심적 우익민족주의 세력.
▶ 좌익세력 : 당 재건. 1945년 9월 박헌영 중심
해방은 불완전한 해방, 미완의 독립으로 볼 수 있다.
2. 1940년대 우리 민족의 정치지형
우선 김구로 대표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이승만, 한국 민주당, 박헌영이 대표주자인 국내 공산주의 세력들, 김일성으로 대표되는 항일무장세력, 여운형을 중심으로 중도파인 건국준비위원회로 나누어 볼
세력이 약화된다. 이어 미군저과 우익세력이 공산주의를 불법화함으로써 좌익이 정치권력에서 이탈하게 된다. 한편 미소의 한반도 분할점령은 정치세력의 자율적인 활동과 자주적인 통일민족국가 수립에 걸림돌이 되었는데, 우리 민족구성원의 의사와는 무관한 모스크바 3상회의의 한반도 처리방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