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이다.
세종대는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가장 훌륭한 유교정치, 찬란한 문화가 이룩된 시대였다. 이 시기에는 정치적으로 안정되어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전반적인 기틀을 잡은 시기였다.
즉, 집현전을 통해 많은 인재가 양성되었고, 유교정치의 기반이 되는 의례·제도가 정비되었으며, 다양하
세종대왕의 둘째 아들로 영예(英叡)하고 필법(筆法)이 신공(神攻)하다 하여 특히 사랑받던 대군이라고 묘사된다. 안평대군의 역사적 기록을 보면 세조 이후 국적(國賊)으로 평가되어 민중의 입에서 오르내리지 못하다가 영조 23년(1747)에 와서 비로소 그 누명을 벗고 복위된 인물이다. 이처럼 실제 인물
세종의 첫째 아들 文宗이 등극하여 제위 2년에 돌아가시었고, 世子로 冊封되었던 단종이 12세의 나이로서 卽位하였다. 이에 宗室에서는 영위한 숙부들이 있음에도 세종의 둘째 아들 수양대군이 일대 야심을 품어 김종서와 황보 인의 두 장군을 암살하고, 동생 안평대군을 流配시켰다가 끝내 죽이고는
집현전 설치 과정
집현전은 국가의 모양새를 완비하기 위한 전문 기관의 필요성에 대한 군신 간의 의견 일치 속에서 탄생했다. 1420년(세종 2)에서 1456(세조 2)까지 37년간 운영되었으며 그 사이 집현전에 근무했던 학사와 관원의 숫자는 100명이 넘었다. 이러한 집현전의 설치와 운용에 대한 관심은 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