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구를 발명하였다. 또한 김담, 이순지 등을 시켜 중국 원 나라의 수시력, 명나라의 대통력을 참작하고 아라비아의 회회력을 빌어 우리나라 고유의 역서인 칠정산내외편을 편찬토록 하였다.
이같은 과학문화재들은 그 어느 나라에서도 흉내내기 어려울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것들로서 세종
세종영문예무인성명효대왕(世宗英文睿武仁聖明孝大王)
-태종과 원경왕후의 셋째 아들
-비는 소헌왕후(昭憲王后) 심씨
② 세종대왕의 업적
-재위 기간 동안 국방과 과학 및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찬란한 업적을 남김.
-한글을 창제했고, 오늘날 10월 9일은 한글날로 정해짐.
-현재 대한민
과학문화재로서도 가치가 큰 유물이다.
<‘앙부일구’사진>
(5)간의(簡儀): 세종19년(1437년)
천체 관측을 위한 기구로, 1276년 중국 원나라 때 처음 만들어졌으며, 세종 때 원나라의 제도를 본떠 이천, 장영실 등이 대·소간의를 만들었다. 1437년(세종19년) 오늘날의 천문관측기기와 같은 원리
되는 의례·제도가 정비되었으며, 다양하고 방대한 편찬 사업이 이루어졌다. 또한 훈민정음의 창제, 농업과 과학기술의 발전, 의약기술과 음악 및 법제의 정리, 공법(貢法)의 제정, 국토의 확장 등 수많은 사업을 통해 민족국가의 기틀을 확고히 하였다. 이 많은 일들을 주도한 인물이 바로 세종이었
과학을 한다고 할 경우 우리는 그것이 사람에게 유용한 것인지를 걱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세종 때의 과학은 그것이 인간에게 어떤 용도가 있는지를 전제로 추구되었던 연구였다. 실용성을 배제한 학문이란 있을 수 없었고, 자연의 탐구 역시 그런 근본적 태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오늘날 세종대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