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립
예종이 즉위후 1년만에 죽고 성종이 즉위하는 동안 유신세력은 간경도감의 혁파를 주장하여 성종 2년 간경도감이 혁파되었다. 성종은 처음에는 대왕대비의 섭정 하에서 왕실불교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였으나, 섭정에서 벗어난 이후에는 억불정책으로 돌아섰다. 연산군은 즉위초에는
확립된 화엄종에게 양보하게 된다. 이와같이 세 가지 철학적 종파는 빠른시간내에 성공적으로 지배적인 종파로 등극하고 쉽게 몰락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단순히 종파간의 교리때문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종파간의 세대교체과정은 어떤 정치적인 요인이 영향을 미치고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본고에
세종, 시호는 경천창운건중표정문무영명관인신의예성대효지성헌황제, 짧은 시호로는 헌황제이며, 연호는 옹정이다. 강희제의 4번째 아들이며, 강희제의 후궁이었던 효공인황후 오아씨의 아들로 태어나 후에 청나라의 5번째 황제로 등극하였다. 뛰어난 통치력을 발휘했던 아버지를 닮아서 꼼꼼하면서
권력쟁투와 무너져가는 인간사의 허무에서 발견한 것이 다름 아닌 인간 존재에 대한 측은지심이었고, 그것이 다시금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승화되었기에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세종은 국초에 권력투쟁의 과정에서 그의 아버지 태종에 의해 수많은 목숨을 희생되는 것을 보았다. 이로 인해 세종의
과정에서 사회계약이 필요하다고 역설한 반면, 홉스와 루소는 자연상태에서 인간들은 모여 살기는 했으나 정치체가 구성되지 않았기에 인간 간의 갈등을 해결할 수 없었으므로 사회계약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홉스와 로크가 개인이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자연적 권리를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