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 언
일제의 한국에 대한 식민지 정책 수립과 그 시행에 있어서 기본이 된 것은 한반도의 토지조사사업과 산미증식계획이었다. 이것의 실시 이후 소작농의 계층분화가 가속화되고 소작농의 생활고는 더해갔다. 더구나 일제하의 소작관계는 고율(高率)의 소작료, 불안정한 소작권 지주의 횡포
소작료 수탈과 고리대를 이용하여 소유 토지를 확장해 나갔다. 남해안의 도서지방과 영산강 유역에는 왕실의 궁방전이 많았기 때문에 궁방전, 역둔토 등 한국정부의 출자지 등을 자산으로 하여 설립된 동척 농장도 다수 들어서게 되었다. 1910년 12월말 현재 강진, 나주, 남평, 영암, 함평, 해남 등지에는
늘어났습니다. 그 반면에 조선 농민들은 자작농에서 소작농으로 전락하여 1918년에는 그 숫자가 8할 가까이나 되었어요. 그 나마도 소작을 부치는 것은 다행이었죠. 일본인이나 지주들에게 찍혀서 소작지조차 얻지 못하게 된 수많은 농민들은 가족을 이끌고 살길을 찾아 고향을 등져야 했습니다.
Ⅰ. 1920년대의 민족협동전선론
민족협동전선론이란 1920년대 전반기 민족해방운동 세력이 분열되어 있는 상황을 전제로 좌파 민족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이 서로 다른 정치적 혹은 계급적 입장을 유보하고 어떠한 형태든지 민족해방을 위하여 협동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사회주의운동 세력은
1. 서론
지금 한국은 한미FTA로 떠들썩하다. 현재 체결이 된 상태지만 체결이 되기까지 여러 가지 난항을 겪었다. 이렇게 난항을 겪은 이유는 한국의 농민이 가장 큰 피해를 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제하의 농민운동을 배워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한미FTA가 체결된 상태의 농민의 상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