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10년대의 농민투쟁
러일전쟁에서의 승리를 계기로 조선을 사실상의 식민지로 장악한 일본제국주의는 조선경제를 식민지 구조로 바꾸기 위한 제반 기초 작업에 착수하였다. 1905년 이래 연달아 추진된 이른바 화폐정리사업, 재정정리사업, 帝室有 및 국유재산조사사업 등이 그것이다. 이와 아울
운동 전개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쳤다. 각각의 이념과 노선에 기초한 운동들은 농민운동의 정세변화에 따라 서로 대립하기도 하고, 연대하기도 하면서 운동의 발전을 이끌었다. 앞으로 많은 연구가 있어야 할 것이나 지주 주도의 농사개량단체 ․ 어용 소작인조합 ․ 초기 조선농민사운동 내부에
농민운동, 노동운동, 민족독립운동 등의 분화과정을 밟게 된다. 초기의 농민운동은 생존권이 걸린 운동이었고 조직화 되지 못한 상태였다. 이후에 토지조사사업과 3.1운동을 계기로 뚜렷한 계급의식을 가진 농민이 자기집단의 권익 실현을 위해 집단적 투쟁을 하는 것이 본격적으로 대두된다. 우리는
농민운동
1. 소작인조합에서 농민조합으로 발전(26년 이후)
소작농 중심조직에서 자작빈농, 자작중농까지 포함했다. 지역적으로도 남부지방 뿐만 아니라 북부지방, 동해안지방에서도 활발히 조직되었다.
2. 조선농민총동맹 창립(27.9)
산하 농민단체 수 27년 160개소, 28년 307개소이다. 그러나 각
운동을 강화할 것과 민족개량주의 측 신간회와 투쟁할 것을 지시. 이에 영향 받아 지회에서 신간회 해소운동이 시작되어 마침내 1931년 5월 15일 전국대회에서 정식 해소됨
Ⅱ. 1920년대의 태을교
증산계 교단은 증산 강일순의 사후 그 제자들에 의해 하나의 종교집단체제를 형성하였다. 태을교 역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