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는 자신이 고소당하게 된 최초의 이유는 선입견에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각 분야의 현자들을 만나며 신탁의 뜻을 깨달았고, 그것을 전파하였을 뿐인데 타인의 눈에는 그 능력이 몹시 뛰어난 자가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것으로 보였다는 것이다. 이뿐 아니라 자신과 함께 ‘무지의 지’ 를
소크라테스는 당시 소위 현자라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무지함을 밝혀내려 했는데, 당시의 학자 혹은 정치가 혹은 어느 분야의 전문가들은 '삼단논법' 으로 무장한 소크라테스의 공격을 받아야만 했다. 소크라테스의 무기는 오직 '무지에 대한 깨달음'으로서, "나는 내가 무지한 것을 안다. 너도
자신이 품으면서 현자들을 찾아다닌다. 주54. ‘겨우겨우’는 자신이 하려는 짓이 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자신이 품고 있는 것으로 자칫 비칠지도 모를 불경한 짓일 수도 있겠기에 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 그리하여 이 사람을 여러 모로 지켜본 즉-제가 이름을 댈 필요는
소크라테스의 생애
젊은 시절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으나 주로 부친의 기술을 배우며 지낸 것으로 추정된다. B.C. 431년 Peloponnesus 전쟁 이후 알려지기 시작한다. Aristophanes의 「구름」이라는 희곡에서 Socrates가 소개됨. 「변명」 B18 40세 이후 철학을 시작하여 자신의 독특한 방법으로 아테네 청년들과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가리지 않고 대화에 끌어들여 상대가 무지의 지를 깨닫기에 이르기까지 공공연하고도 끈질기게 문답을 끌어나갔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민주정에 대한 비판자였다. 그가 이상적으로 생각한 정치제도는 현 세상에서는 불가능한 것이지만 철인(哲人=도덕적 전문가)에 의한 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