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한중 수교와 양국 관계의 냉각
중국은 1990년대 들어서 중소 냉전이 끝을 고하면서 북한에 대해 어느 때보다 강도 높은 실용주의노선을 추구한다. 그 결과가 한중 수교였다. 1992년 중국은 한중 수교를 단행하기로 하고 국가주석 양상곤을 김일성 생일기념사절로 파견하여 양해를 구하였다. 양해를
우리나라는 그동안 자주국방을 추진하여 왔으나 아직까지 안보의 중요한 축을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 게다가 우리는 북한의 군사적 위협뿐만 아니라 미래의 잠재적 위협도 고려해야 하고 한·미 동맹관계의 변화도 대비해야 하는 등 안보환경의 급격한 변화에 직면하고 있다. 이러한 안보환경의 변화
자주국방이라는 미명아래 국방예산의 대폭적인 증액을 통한 대규모 군비증강을 추진하고 있다.
군축을 추진하는데 선행적 과제는 남북한이 보유해야할 적정군사력을 평가하는 것이다. 평화공존시 적정군사력과 통일국가의 적정군사력에 대해서는 이미 몇 편의 연구성과물들이 나와 있다. 통일국가
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려고 했다. 또한 독립신문을 독립협회와 따로 떼어내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언론사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독립신문을 더 이해하기 위해서도 그의 사상과 독립협회에 대해서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 글에서는 송재 서재필의 생애와 사상, 독립신문의 발행과
속국으로 만드려는 예속성도 비추었다. 처음엔 보안동맹이었던 한미동맹은 그 성격을 점점 달리하여 침략동맹화 되고 있다. 이것은 한미 연합군의 작전계획을 통하여 알 수 있는데 1953년 한국전쟁 후 수립한 작전계획 5027에는 북의 남침 시 휴전선에서 이를 방어한다는 명목이 2년마다 개정되어 70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