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익필
조선 중기 때의 문신 · 문인. 서울출생.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계함(季涵), 호는 송강(松江). 돈녕부판관 유침(惟沈)의 아들이다. 어려서 인종의 귀인인 큰 누이와 계림군유(桂林君瑠)의 부인이 된 둘째누이로 인연하여 궁중에 출입, 같은 나이의 경원대군(慶源大君 : 명종)과 친숙해졌다.
이이를 이어 송시열로 이어지는 서인계열의 전수자로 평가되며, 예학을 계승한 인물이다. 그러나 김장생은 송익필의 제자이기도 했기 때문에 이이만을 이었다고 보긴 힘들다. 송익필은 이이 외에도 서경덕의 연원에 속하는 인물들과 친했기 때문에 그로부터 받은 영향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송익필(宋翼弼, 1534~1599)에게 배워 성리학으로 예학의 바탕을 마련하고. 정밀하게 예를 고증하는 데 힘써, 예학의 학문적 기초를 수립하였다. 그가 조선 예학의 일대 종사라는 평을 받는 이유는 예학에 대한 업적이 지대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학문적 업적에 앞서 거경준례(居敬遵禮)로 일관된 학행(學
불리우며 이이(李珥)의 성리학설(性理學說)을 계승한 일단의 학자들을 말한다. 이들이 주로 경기(京畿)와 호서(湖西)에 살았기 때문에 이황(李滉) 및 그의 문인들과 구별하여 기호학파라 하였다. 김장생(金長生)·김집(金集)·김창협(金昌協)·송시열(宋時烈)·송익필(宋翼弼) 등이 대표적인 학자이다.
송익필 등과 함께 팔문장으로 불리었고, 당시(唐詩)에도 능하여 삼당파(三唐派)라고 일컬어졌다. 문집으로『고죽유고』가 있다.
을 따르고 옥봉 백광훈(白光勳) 백광훈(白光勳) : 1537~1582, 조선 중기 시인으로 자는 창경(彰卿), 호는 옥봉(玉峯)이다. 박순(朴淳)의 문인으로 13세에 상경하여 양응정 · 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