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은 전쟁 중에서 규모면과 전후 영향력을 고려했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전쟁은 6.25 사변, 그리고 수, 당나라와 고구려 사이의 전쟁일 것이다. 여기서 후자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당시 수나라와 당나라는 엄청난 병력을 동원하여 고구려를 공격하였으나 고구려는 멸망하는 668년까지 그들의
수나라는 손쉽게 동돌궐마저 굴복시켰고 주변의 작은 나라들은 이에 강대한 수나라의 눈치를 보기에 바빴다. 한반도 역시 수나라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수나라와 국경을 맞댄 고구려는 상당한 위협을 느끼고 수나라에 사신을 계속 보내고는 있었지만, 다음 공격 대상이 고구려라는 것을 잘 알고
그는 니궤처라칸이라고 불렸다.
隋煬帝時嘗從征高麗, 賜號曷薩那可汗。(曷薩那一作曷娑那。)
수양제시상종정고려 사호갈살나가한 갈살나일작갈사나
수나라 양제가 일찍이 고구려 정벌을 가는데 갈살나칸이란 호칭을 하사하였다. 갈살나는 일명 갈사나라고도 한다.
唐初曷薩那入貢大珠, 高祖面諭
고구려의 문화역량은 상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아쉽게도 오늘날 남아 있는 고구려의 불교조각은 너무도 그 수효가 적어 고구려 불교조각의 진면목을 알기에는 너무도 부족한 점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고구려가 수나라와 당나라 등 외세와의 많은 전쟁을 치른 것을 고려해볼 때 전란의 혼란
장미라 합니다. 임금님의 높으신 덕을 듣고, 꽃다운 침소에 그윽한 향기를 더 하여 모시고자 찾아왔습니다. 임금님께서 이 몸을 받아 주실는지요?”
이 때 베옷을 입고, 허리에는 가죽띠를 두르고, 손에는 지팡이, 머리는 흰 백발을 한 장부 하나가 둔중한 걸음으로 나와 공손히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