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문제는 그 특성상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문제이다. 흔히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라 하여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의 침탈에 앞장서서 도와주거나, 그들의 논리에 동조하거나 혹은 묵인했던 친일파에 대한 해결이 제때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들에 대한 처벌은 해방 직후 이루어졌어야
시기와 같다고 보지는 않는다. 한국의 민족주의의 출발은 의견이 분분하긴 하지만 1860년대부터로 보는 견해가 많다. 이는 한국 민족주의의 특성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는데 한국 민족주의는 외세의 침략에 대한 저항을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저항적 민족주의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특성이 가장 잘
친일파란, 대체적으로 작위관료 등 지배계층에 종사한 행위, 군경 등 직간접적으로 행한 민족 탄압행위, 사회저명인사로 여론 등으로 반민족적 영향력을 행사한 경우, 경제적으로 민족에 해를 끼친 경우, 국가주권침탈에 관여한 행위를 한 이들이다 임헌영
라고 할 수 있다.
2. 친일파의 활동
1) 시기
고찰해 보고자 한다.
Ⅱ 태동기시대(1947~1959)
1 환경적 배경
1) 사회적 배경
이 시기에는 생산시설의 가동불가능 등으로 수요초과현상이 나타나서 마카오․홍콩을 대상으로 하는 무역업이 성행하였다. 마카오무역은 일본이 한반도에 남기고 간 전략물자를 구하려는 홍콩무역업자들이 중석
1990년대를 전후하여 세계사적인 대전환이 진행되었다. 1989년 구공산권의 붕괴는 이념과 체제대립을 근간으로 하는 냉전질서는 물론 국민국가와 대의 민주주의에 기반을 둔 보편주의적 근대질서를 송두리째 뒤흔드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우선 이러한 냉전체제가 붕괴됨으로써 개별국가 수준에서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