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화 - 우리 오빠와 화로
사랑하는 우리 오빠 어저께 그만 그렇게 위하시던 오빠의 거북무늬 질화로가 깨어졌어요.
언제나 오빠가 우리들의 '피오닐' 조그만 기수라 부르는 영남(永男)이가
지구에 해가 비친 하루의 모-든 시간을 담배의 독기 속에다
어린 몸을 잠그고 사온 그 거북무늬 화로가 깨
시인으로 올라섰다. 그해 박영희의 후원으로 연극공부를 하기 위해 도쿄로 유학을 갔으나 일본 사회주의자들의 영향을 받아 사회과학에 관한 책만 탐독했고 김남천·안막·한재덕·이북만 등과 함께 '무산자사'에서 활동했다. 1931년 귀국해 이북만의 누이 이귀례와 결혼했으며, 그해 KAPF 제1차 검거사건
시인이자 비평가이고 카프의 중심인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북에서도 결국 숙청당했기 때문에 북의 문학사에서조차 완전히 제거되어 버렸던 것이다. 하지만 끈질긴 노력으로 김윤식에 의해 조금이나마 임화 연구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Ⅱ.본론
1. 임화의 생애
1908년 10월 13일 서울 낙산의 중산층
임화의 활동상 가운데 비평분야는 아주 두드러지게 활발하다. 37년도에도 그는 10여 편을 상회하는 평론들을 발표했고 이어 38년에는 30편 넘는 글을 쓰는 등 30년대 후반기에 100편을 육박하는 평론을 쓴 셈이다.
카프 해산 후 임화는 시 분야에서도 의욕적인 활동을 펼친다. 가장 많은 양의 작품을 발
1. 임화의 생애 및 작품세계
1.1. 작품에 들어가기에 앞서
<우리 오빠와 화로>는 1929년 2월 《조선지광(朝鮮之光)》에 발표된 임화의 대표작이다. 카프 시대에 임화가 쓴 시는 계급성을 지닌 경향시의 대명사처럼 일컬어진다. 그는 스무 살을 넘기면서 <네거리의 순이>, <우리 오빠와 화로>, <우산 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