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화의 활동상 가운데 비평분야는 아주 두드러지게 활발하다. 37년도에도 그는 10여 편을 상회하는 평론들을 발표했고 이어 38년에는 30편 넘는 글을 쓰는 등 30년대 후반기에 100편을 육박하는 평론을 쓴 셈이다.
카프 해산 후 임화는 시 분야에서도 의욕적인 활동을 펼친다. 가장 많은 양의 작품을 발
한국 모더니즘 시사』, 문예출판사, 2000, p.99
1937년 신석초, 서정주, 이육사 등과 동인지 ≪자오선≫, ≪시인부락≫ 등의 멤버로 활동하였다. 그의 시풍은 서구의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았으나 김기림이나 이상처럼 급진적이고 파괴적인 요소보다는 온전하고 차분한 회화적인 이미지를 구사하였다. T.E
작품에서의 ‘내용’제거만을 내세우지 작품상으로나 이론상으로 자기들의 새로운 미학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최하림 편저, 『김수영』, 문학세계사, 1995, pp. 263-274. 이하 시론이나 시에 대한 반박 등은 이 책에서 인용하였다.
김수영은 참여파의 평론에 대해 현실을 극복하는 주장에는 일치하
체포되어 평양감옥에서 이광수(李光洙) · 계광순(桂光淳) 등 납북 인사 33인과 함께 수감되었다가 유엔군의 폭격으로 폭사당하였다. 이 장에서는 월북작가 박태원과 정지용문학의 존재방식(공통점과 차이점)을 분석하고, 북한문학사에서의 위상평가에 대해서도 비교분석해 보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