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들이 다수 포함되어있다는 점에서 무조건 이들을 매국노로 몰아붙이고 ‘민족’의 입장에서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진정한 식민지 잔재의 청산이라고 볼 수 없다. 물론 식민지 시대의 친일은 어떠한 논리에서든 정당화 될 수 없지만, 이러한 친일 행동에 당시 조선의 남성, 여성지식인들이
여성에 대한 재현 체계의 변화는 그와 같은 제국-식민의 관계 변화 즉, 전쟁 상황에서 강화된 친일 혹은 협력을 바탕으로 발생하였다. 따라서 제국-식민의 정치 논리 속에서 식민지 근대성의 양가성은 극화되었고, 이에 엇물려 여성에 대한 재현 체계 역시 일대 변화를 맞이하며 자의든 타의든 간에 필
여성을 “근대교육을 받은 지식인으로 정의하며 그러한 맥락 속에서 이해하였다.
1980년대 신여성에 대한 연구는 사회학적인 방법론을 통해 신여성이 당대 한국 사회 구조적 변동의 산물이며, 동시에 이에 대응하는 한국 여성들의 삶을 밝힘으로써 식민지 상황하의 한국인의 삶과 사회구조와의 관련
식민지배가 절정에 달했던 40년대 초반 조선의 상황과, 지식인들의 사상적 변화와 친일 양상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하지만 사상적 변화의 경우 일제의 영향이 매우 컸을 것이라 예상되며 전향이 곧 친일이라는 의미로 쓰이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조선인뿐 아니라 지배자의 입장에 있었던 일본인, 특
친일파만으로는 3.1운동 후의 식민지 통치에 도움이 되지 않음을 알게 된 일본은 새로운 친일 세력을 양성함으로써 식민지 통치에 이용하고 독립운동 전선을 분열시킬 정책을 세웠다. 이른바, 일본은 문화통치를 하면서, 회유・포섭을 통해 민족의식이 허약한 자산계급과 지식인 종교계 등을 중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