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는 다시 신라까지 넘보았으나, 670년 신라가 먼저 압록강을 건너 당나라를 공략, 나당전쟁으로 들어갔으며, 671년·675년, 그리고 676년에 군량보급 차단, 매소성전투, 기벌포대첩 등으로 당나라를 압박하여 안동도호부를 평양에서 랴오둥으로 옮기게 함으로써 신라는 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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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필자는 과학적인 역사와 비과학적인 역사를 어떻게 구별하는가?
필자는 역사를 크게 ‘사실로서의 역사’와 ‘기록으로서의 역사’로 구분하고 있다. ‘사실로서의 역사’는 과거에 일어났던 무수히 많은 객관적인 사실을 의미하고, ‘기록으로서의 역사’는 과거의 사건을 바탕으로 역사가가 재
신라인’ 이라는 계층이었다는 것이다. 당이 동아시아의 중심이 되어 있는 상황에서의 그들의 생존 방법은 ‘경제권’의 장악 이었을 것이며 최근에 말하는 ‘틈새시장’을 적절히 공략하여 성공하게 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신라방, 신라소, 신라촌 등은 그들의 정착촌이었다. 유민계층은 그쯤에
대한 민국과 통일 운동
1. 독립운동의 본거지 만주
1910년 8월 29일 일본은 대한제국을 탄압하였으며, 1912년 6월에 105인 사건이 있은 후 유인석이 북간도로 들어가 그 때부터 만주가 애국지사들의 독립운동 본거지가 됐다. 이시영 여섯형제들도 만주 통화현으로 망명하였으며 이승만과 안창호는 미
고구려, 백제, 신라삼국이 만주와 한반도 일대에서 중앙집권적 국가로 발전한 시기를 일컫는다. 각국의 전성기로 평가되는 시기는 백제 4세기, 고구려 5세기, 신라 6세기 순이다.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에 의해 백제(660년), 고구려(668년) 차례로 멸망하면서 한반도 중남부에는 통일신라 북부에는 발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