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의 낭만주의는 중세의 보편적 가치에 대항하고 개별 국가의 정체성 확인에서 시작된 것이기 때문에, 수세기에 걸쳐 각각의 민족문화권 내에서 독립적으로 발전해왔으며, 따라서 개별 국가의 낭만주의를 포괄할 수 있는 보편적 개념이나 일반화된 특성을 추출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원론적
의숙을 지어 야학 등 농촌계몽활동을 약 2년간 벌이는 가운데 30년대 궁핍한 농촌 현실을 희화적으로 체험한다.
1933년 다시 서울로 올라간 김유정은 농촌과 도시의 밑바닥 인생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는 신명에 빠진다. 1933년 잡지 <제일선>에 ‘산골나그네’와 <신여성>에 ‘총각과 맹꽁이’를 발표
의숙에 진학하게 된다. 1919년 봄 휘문의숙 3학년에 재학 중이던 그는 31운동사건에 가담한 죄로 경찰에 체포, 구속되었다가 석방된다. 곧 고향 강진 땅으로 내려 간 영랑은 그곳에서도 독립 만세운동을 모의하다가 사전에 발각되어 6개월간 옥고를 치렀고 결국 휘문의숙을 중퇴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
의숙(金屛義熟)으로 넓히고 간이학교로 인가 받음
6월 15일 처녀작 단편 심청(深靑)을 탈고. 충남 예산 등지의 금광을 전전함
1933년(26세) 서울에 올라와 사직동에서 누님과 함께 기거. 폐결핵 발병진단
1월 13일 <산골 나그네> 탈고, 발표. 8월 6일 총각과 맹꽁이를 탈고
(공식적으로 발표된 작품으로 처녀
의숙으로 인가를 받았다. 그는 동리 주민들과 같이 몸소 금병의숙의 건물을 짓고 그 완공 기념으로 느티나무를 식수했다. 단순한 야학운동이 아니었다. 생활개혁운동까지 밀고 나갔다. 유정이 있는 동안 실레 마음에는 도박과 음주가 자취를 감추었다. 생필품은 공동으로 구매해서 싼 값으로 나누어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