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수와 민족대표자중 한사람이었지만 이후 변절하게 된 최남선, 그리고 시종일관 항일 투사적 면모를 보인 단재 신채호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한국문학사에서 이광수를 필두로 한 일제 강점기의 작가들은 우리 문학을 매우 풍요롭게 하였다. 문학사에서 그들의 '작품'은 작품성으로 평가받지
운동이 <소부르주아의 개량주의 운동이며, 그것은 프롤레타리아의 반제 혁명 의식을 약화시키는 것>이라는 데에 주어진다. 여기서 조선 물산 장려 운동에 대한 좌우 토론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겠다. 좌파에 의하면, 이 운동은 <정치적 독립이 없는 상태 내에서의 민족 자본 축적>을 목표하고 있는데,
수 없게 되었다. 우리는 스스로 耕作․耕食한다. 토지소유권은 인정될 수 없는 것인데도 국가가 이를 승인함은 부당하다. 우리는 끝까지 이를 타파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지경이 된 것은 일본인의 소행이다. 조선의 지주도 일본인과 한 무리가 되었다.”(조선총독부『조선의 군중』1925).
최근 몇 년간 이승만 흉상 건립과 김활란상 제정, 홍난파기념관 · 이은상문학관 건립, 그리고 박정희기념관 건립 등을 둘러싼 대립과 논쟁 등에서 보듯 친일문제와 관련하여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친일파 후손들이나 기념관을 추진하는 사람들은 과거의 잘못된 행위에 대해 아무런 문제
민족문제테제’에 기초하여 나온 외국에 거주하는 자는 주재국의 노동자·농민 해방에 적극적으로 참가해야 한다는 국제주의 관철요구- 을 내세우자 해외 주재 공산주의자들이 조선공산당 해외본부-만주총국, 일본총국등-를 해체하고 해당국가의 공산당에 입당하였다. 중국의 경우 만주 총국이 해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