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가가 이 부분을 인용하여 중국의 문물을 배울 것을 주장한 자신의 저서 제목을 ‘북학의(北學議)’라 이름한 이후, 북학은 청나라에 남아 있는 중화(中華)의 선진문물을 배운다는 의미로 널리 사용하게 된다. 청나라의 새로운 문물을 익혀 오히려 더욱 발전시키고자 하는 박제가의 뜻을 가늠하게
것을 말한다.
대체로 18세기 이후 실학의 흐름은 이익으로 대표되는 경세치용학파와 박지원·박제가·홍대용으로 대표되는 이용후생학파 및 완당 김정희에 이르러 일가를 이룩하게 된 실사구시학파로 대별된다. 그러나 이 세 유파가 제각기 학문분야를 달리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념과 방법에 있어
박제가는 당시 보고 들은 내용 가운데 조선에 행해지면 일상생활에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모아 29세 때(1788) 그의 대표작으로 일컬어지는 『북학의(北學議)』를 저술하였고 이를 통해 홍대용과 박지원 등의 학풍을 계승하여 북학론(北學論)을 정립시켰다. 또한 정조의 서얼허통법(庶孼許通法) 실시로 17
실학자로는 색경을 지은 박세당, 산립경제를 지은 홍만선, 임원경제지를 지은 서유구 등이 있다. 중농적 실학사상은 한말의 애국계몽 사상가와 일제 시대의 국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 유형원
1. 생애
서울 공릉에서 태어난 반계 유형원은 1622년에 태어났다. 그가 처한 시대 상황은 지극히
실학 운동은 사림의 성리학이 현실 세계에서 긍정적 의미를 상실하자, 현실에 토대하여 기층 세계의 입장에서 사회 모순을 개혁하고자 하였으니, 따라서 실학사상은 비판 정신, 과학 정신, 근대 지향 의식, 실천 의지, 민족의식, 그리고 민중 중심의 세 계관을 강조하였다.
Ⅱ. 북학의(실학자 박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