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心喪) 일년을 더하였으며, 심상을 마친 18세 가을에 관례(冠禮)를 행하였다. 그리고는 19세 되던 3월 금강산에 들어갔고 1년을 머문 뒤 곧 금강산을 내려와서 강릉에 머물며, 「자경문(自警文)」을 지어 성인(聖人)을 준칙으로 삼아 공부할 것을 스스로 기약하였고, 21세 봄에 서울로 돌아와 한성시(漢
심상(心喪)을 입는다고 했다. 이 상례는 오례의 하나로서, 곧 길례(吉禮), 흉례(凶禮), 빈례(賓禮), 군례(軍禮), 가례(嘉禮) 중에 속하는 데 이 중의 어는 예보다도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안되는 의식이다. 그러기에 옛날 애공(哀公)같은 임금은 공자에게 물어 본 다음에 상장(喪葬)의 일을 결정했다 한다.
성리학은 조선사회를 어떻게 변화시켰는가
1. 조선시대를 보는 시각의 변화
기본적으로 조선은 성리학의 바탕위에 건국되었다. 따라서 조선의 정치·경제·사회·문화는 성리학적 논리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일본은 식민지사관을 통해 조선왕조를 당쟁론·사대주의론에 입각한 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