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는 뮌헨에 있는 독일노동당 집회에 참석했다. 독일노동당은 반유대주의에 기반을 둔 반혁명정당으로서 사회주의적 정책과 애국주의를 결합시킨 중간계급 위주의 정강을 채택하여 대자본과 귀족특권계급에 반대했다. 이 집회의 토론에 참여한 히틀러는 당간부인 드렉슬러의 주목을 끌었고, 며
히틀러는 1921년, 드디어 독재 권한을 지닌 나치당의 당수가 된다. 1923년 뮌헨에서 히틀러는 쿠데타를 감행한다. 그는 체포되고 5만 여명에 이르는 나치당의 활동은 금지되었다. 1924년 재판에서 5년형을 선고받고 란츠베르크 감옥에 투옥된 그는 그곳에서 「나의 투쟁」을 집필한다. 그해 말 집행유예로
노동력을 착취했다.
폴란드 안에 만들어진 최초의 강제수용소인 아우슈비츠는 친위대 대장인 하인리히 히믈러(Heinrich Himmler)의 지시에 의해 건설되어, 히틀러의 심복인 루돌프 헤스(Rudolf Hoess)가 수용소장으로 일했다. 최초에는 폴란드 정치범들을 점진적으로 살해하기 위한 장소로 이용되었으나, 1942
대결을 위해 독일 영토 내에서의 새로운 사회 질서 구축을 목표로 하였다. 즉 나치 이념은 인종적, 생물학적 특징에 상당한 주안점을 두면서 오직 타 인종이나 국가와의 투쟁을 통해서만 위대한 독일제국을 건설할 수 있다는 쇼비니즘 광신적 애국주의, 일종의 극우사상
에 기초한 사상이었다.
히틀러는 전쟁 전에 이미 그럴듯한 사상의 연합을 발견했다. 그것은 민족주의와 사회주의의 결합이었다. 이 두 가지가 합쳐질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보헤미아에 사는 독일 노동자는 어떻게 생각했던가? 그들은 외국에 거주하는 독일인으로서 조국애를 느꼈다. 동시에 그들이 사회주의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