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가로 꼽히는 인물로 서양지성사의 방향과 내용에 매우 큰 영향을 끼쳤다. 그가 세운 철학과 과학의 체계는 여러 세기 동안 중세 그리스도교 사상과 스콜라주의 사상을 뒷받침했다. 17세기말까지 서양 문화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였으며 수백 년에 걸친 과학혁명 뒤에도 아리스토텔레스주의는 서양
아리스토텔레스는 고대 철학에 있어 큰 업적을 남긴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고대 그리스 최대의 철학자로 칼키디케의 스타기라에서 출생했다. 그의 아버지 니코마코스는 마케도니아의 왕 아민타스 2세에게 고용되었던 의사였으며, 프록세노스라는 후견인에게 그를
철학적 물음들은 모두 당시의 사회 역사적 상황과 깊게 맞물려 있다. 즉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철학자들의 사상은 그 철학자의 시대나 사회적 구조에 깊이 얽매여 있어 철학을 이해하는 데 역사적 시각을 확보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철학의 발생은 노동의 급격한 변화로 인한 새로운 생활방식
대화편들은 후기의 것들로 분류된다.
20세 경에는 소크라테스(Sokrates, 469-399 B. C.)의 문하에 들어가 그가 장려하던 토론의 열렬한 참여자가 되었다. 원래 정치적 야망을 갖고 있었으며 실천적 의지에 불탔던 플라톤은 일생을 통하여 그는 소크라테스의 철학적 탐구 정신과 목표와 방법의 감화를 받았다.
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으로 들어가기 전에 이러한 부분은 한번쯤 짚고 넘어갈 만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중세에 살던 사람들은 갑자기 지능지수가 절반 이하로 떨어져버린 퇴화된 종족이 아니다. 그들에겐 여전히 그리스시대 이후로 전해지는 지식들과 이성을 사용하는 법이 있었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