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들(한국을 포함하여)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 글은 칠레의 정치사를 개괄적으로 정리하는 것을 첫째 목적으로 한다. 긴 시기를 짧은 글에 담아냄에 있어 어느 정도의 왜곡은 피할 수 없는 것이겠지만 최대한 객관적이고 알기 쉽게 정리하고자 노력했다. 또한 정파 대립에만 치중하지 않고 경제적 분
경제성장은 군부의 위기에 안식기를 제공했지만, 시장중심적 발전모델 속에서 국내의 분배갈등을 해소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결국 칠레는 자유화와 개방화를 추진했음에도 다른 중남미 국가들과 같은 위기에 직면한다. 다른 중남미 국가들의 외채위기가 민중주의적 거시경제정책과 폐쇄주의적 수입
학살하고 고문과 납치를 자행한 칠레 총사령관 출신의 독재자이다. 73년 유혈 쿠데타로 살바도르 아옌데 정권을 무너뜨리고 집권한 그는 90년까지 칠레를 철권통치함으로써 중미의 어두운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는 재임중 개정헌법을 통해 퇴임 이후인 1998년 3월까지 총사령관직을 보유했으며
거듭했다. 1938년 선거가 다가오자 공산당(PC)과 급진당(PR)이 인민전선(Popular front)를 결성했고, 1938년에는 사회당(PS)과 민주당(PD) 그리고 칠레 노동자연맹까지 포함된 강력한 인민전선이 구축되었다. 이때 인민전선의 후보로 급진당의 아기레 세르다가 보수파 후보와의 접전 끝에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칠레의 구리와 초석에 주목하고 광산을 개발하였으나 미서 전쟁 이후 진출하기 시작한 미국이 20세기에 들어서면서 1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투자가 급증하여서 영국을 추월하였고 구리를 장악함으로써 칠레경제의 중심부분을 지배하게 되었다. 또 제조공업에 대한 투자도 60년대부터 확대하여 “진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