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으로부터 전래된 인형극의 영향을 받았으며, 그 인형극은 이미 삼국시대의 고구려악에 있었고, 그것은 중국을 거쳤거나 혹은 직접 북방을 거쳐 수입된 서역악의 일종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점은 고구려 악무 중 서역악에서 유래된 가면무악과도 서로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악무는 아악·당악·속악(향악)으로 나누어져 있다. 중국에서 전래한 궁중음악인 아악을 먼저 엮었으며 그 분량은 1권으로 채워져 가장 많다. 이에 반해 당악과 속악은 합하여 1권을 이루고 있다. “高麗雜用之故集而附之”라 하여 아악에 부록된 형식이 당악이고 속악은 고려와 삼국속악으로 나누어 제
악무조(樂舞條)에 의하면 최표의 『고금주(古今注)』에 기록된 이 노래의 배경설화는 이렇게 전하고 있다.
공후인은 조선(朝鮮)의 진졸(津卒) 곽리자고(涇里子高)의 아내 여옥(麗玉)이 지은 것이다. 자고(子高)가 새벽에 일어나 배를 저어 가는데, 머리가 흰 미친 사람이 머리를 풀어헤치고 호리병을 들
일치하지 않고 있으므로 민요로서의 원가는 서정적 자아가 사랑하는 임을 떠나 보내는 이별의 슬픔을 비극적 정조(情調)로 노래하고 있는 것이지만, 이것이 궁중음악인 속악으로 수용되면서 그러한 비극적 분위기와는 관계없이 태평성대를 구가하는 후렴구를 덧붙여 왕실의 궁중음악으로 향유되었음
악무(樂舞), 음악사(音樂史) 등등 광범위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 것은 우리의 전통음악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문헌이다.
이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서는 67종의 악기를 만든 재료에 따라 8가지 즉 8음(八音또는 八部)으로 구분하였다.
1. 금부(金部)
편종(編鐘), 특종(特鍾), 방향(方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