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제리의 공산당(KP)에 가입하고 1년 후 탈퇴, 언론인으로 노동 극장(Théâtre du travail)을 설립하여 식민지정치의 부당성을 위해 투쟁했다. 제2차 세계대전중 1942년프랑스로 이주한 후 전투(Combat)라는 레지스탕스에 가입했다. 이 시기를 전후하여 카뮈의 문학작품이 출판되기 시작하여 문학자로서
☆ 김원일(金源一, 1942- )
작가 김원일은 1942년 경남 진영 출신으로 서라벌 예대 문학 창작과를 거쳐 영남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66년 매일신보 신춘문예에 <1961년 알제리아>가 당선되고 1967년 <<현대 문학>>에 <어둠의 축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피의 체취>(1972), <어둠의
교수자격심사(이 심사를 통과했다면 그는 대학교수로서의 인생을 살았을지도 모름)에 응하려했지만, 결핵이 재발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건강을 되찾기 위해 프랑스 알프스 지방에 있는 휴양지로 떠났고(첫 번째 유럽 방문), 이탈리아 피렌체와 피사 및 제노바를 거쳐 결국 알제리로 돌아왔다.
중 터키 해적선의 습격을 받아 알제리에서 5년 동안 노예생활을 한다. 그러나 그는 노예생활 중에도 절망하지 않고 탈출이라는 적극적인 행동으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려고 시도하였다. 도중에 네 번의 탈출시도가 있었으나, 번번이 실패하여 숨긴 자는 사형에 처한다는 방까지 붙을 정도였다.
문학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된다. 1952년 10월, 파농은 리옹의 학창시절에 알게 된 프랑스 여자 마리 죠셉 뒤블레와 결혼한다. 이때 이미 그는 아프리카에서 몇 년 동안 일한 뒤 마르띠니크로 되돌아가리라는 결심을 분명히 하고 있었다. 그는 알제리의 블리다 쥬엥빌에 있는 어떤 병원에서 원장으로 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