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사회는 말기로 접어들면서 전반적으로 사회 기강이 무너지고 퇴폐 풍조가 만연하고 있었다.
그러던 그는 키케로의 『철학의 권유』를 읽으면서 지적 세계에 대해 관심을 보인다. 이 무렵 그는 마니교에 심취해 10년간을 마니교 신자로 보내면서 나중에는 존경받는 지위자의 지위에 오른다.
역사와 신학의 바른 이해를 원한다면 어거스틴에 대한사상적 이해가 필요하다. 따라서 어거스틴은 초대교회의 마지막 인물이면서 그의 역사철학과 은총의 교리는 중세교회와 종교개혁의 사상적인 지주가 되었다. 그러므로 루터의 신학이 개혁신학의 초석이 되었다고 한다면 어거스틴의 신학은 청교
철학은 이 가치라는 개념을 배제하려고 무진 애를 쓴다. 오류를 회피하려는 부단한 시도이다. 현상에 대한 의미 부여 대신에 본질의 정수를 찾아야만 된다는 사명감으로 역사상 수많은 시행착오와 오류가 있었지만 그것은 그것으로 가치있는 일이었다. 어떠한 사회 어떠한 역사를 만들어야만 한다는
그리고 오늘날에 미친 영향 등을 깊게 살펴봄으로써, 그가 주장하는 기독교 정신의 의미와 그의 교육적 사상 등을 알아보고자 한다. 아울러 그의 사상이 고대의 철학자들과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와 중세의 새로운 정신적 기초를 마련한 그의 사상이 갖는 역사적, 교육적 의의를 함께 알아보겠다.
어거스틴의 인정을 받으면서 모든 기독교학교 교과과정의 핵심이 되었다. 기독교 사상과 인문주의 학습의 결합은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현상이다. 본 장의 후반부에서는 지금도 교육에 영향을 주고 있는 인문주의 교육에 대한 종교적 해석 내지 신토마스주의적 해석에 대하여 기독교 학교와 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