Ⅳ. 항우의 실패원인
항우는 유방에 비해 전력면에서 절대우위에 있었지만 결국 실패자로서 비극적인 종말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그 누구도 감히 넘보지 못할 힘과 세상을 아우르는 기개를 가지고도 그가 실패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그의 성격과 통치 스타일에 있어서의 문제라
항우 역시 그러한 인물로 중국사에서 비극적인 영웅으로 각인되어 있다. 이런 이미지는 역사의 진실을 전하기 위해 목숨을 건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역사가 사마천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사기』에서 항우의 전기는 제왕들의 전기인 본기(本紀)에 속해 있으며, 유방과의 싸움에서 패배는 했지만,
1. 한신은 제나라를 굴복 시킨 후, 괴통에게 새로운 나라를 세우자는 말을 듣는다. 허나, 이를 사절하고 결국 천하를 통일한 뒤, 역모를 꾀하다 죽임을 당한다. 여러분은 괴통을 건의를 수용하여 독자노선을 걷겠는가? 아니면 한신처럼 행동 하겠는가? 또한 토사구팽과 관련하여 유방이 잘못하였는가? 아
역사는 신화와 비슷하기 때문에, 또 문자가 아주 특별한 사람들의 전유물이었기 때문에, 어떤 사건이라도 그 해석의 방향이 천차만별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러한 중국의 역사를 되돌아 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유추관계의 역사 속에서의 제왕과 영웅의 과업들이다. 정사를 통한 정확한 사
유방을 따르겠다고 모였는데 그 수가 몇 백은 되었다.
진나라 2대 황제 호해胡亥 황제 원년 가을, 진시황이 죽고 난 뒤 진승陳勝과 오광吳廣을 우두머리로 한 무리가 반란을 일으켜 진나라 군대를 격파한 뒤 다음 왕을 자칭하고 국호를 ‘장초長礎’라 하였다. (같은 해 9월에 항량과 항우도 회계군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