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의 눈물은 공감을 얻기 어렵다는 주장이 더 강했다. 이것은 국내 애니메이션 커뮤니티에서도 논쟁거리로 여전히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논쟁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 자명한데 이것은 다카다하 감독 개인의 의도나 <반딧불의 묘>라는 영화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느냐 와는 상관이 없기 때문
고아인 세이타가 죽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가 들끓는 복대 속에서 세이타가 꼭 품고 있었던 알사탕 깡통 속에는 영양실조로 죽은 네 살짜리 여동생 세츠코의 하얀 뼈 조각이 들어 있다. 여동생 세츠코의 하얀 뼛조각이 나뒹구는 그 자리에는 반딧불들이 하늘을 어지럽게 날고 있다.
화상을 입어 결국 돌아가시고 만다. 해군 장교로 전쟁에 나가서 연락이 끊긴 아버지, 그리고 돌아가신 어머니... 세이타는 어린 동생에게 사실대로 말해줄 수 용기가 없었다. 동생을 이끌고 알던 아주머니댁을 찾아갔지만, 그 곳 역시 전쟁으로 인한 물자부족으로 남매을 데리고 있을 여력이 없었다.
전쟁의 피해자인 것처럼 묘사하여 군국주의를 미화했다”는 등 반감을 표출하는 평도 있었던 것이다. 한참 동안 평을 읽어보던 중“사상을 떠나 오랜만에 눈시울을 붉힌 애니메이션 한편을 만났다”는 글을 보고 일단은 애니메이션을 보고 나서 판단을 내리는 것으로 결정했다.
이 글은 <반딧불의
일본애니메이션 속에 제국주의에 대한 열망이나 우리나라에 대한 반한감정, 고속성장에 대한 정당화 등의 내용이 들어있다는 것을 각종 매체를 통하여 접하게 되었을 때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필자는 이 논문을 통하여 우리가 지금까지 무의식 적으로 수용해 왔던 일본애니메이션에 대하여 제국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