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려의 성립과 발전
1) 왕건의 쿠데타
왕건이 궁예를 쫓아내고 고려를 건국한 것은 918년이다. 공양왕(恭讓王)까지 34대 475년간 존속했다. 신라 말에 송악(松嶽:開城)의 토호(土豪)였던 왕건은 태봉(泰封)의 왕인 궁예(弓裔)의 부하로 있다가 918년 궁예를 추방하고 즉위하여 국호를 고려, 연호를 천수(
왕규, 공영달 등의 직언과 간언, 상소 등의 내용과 고금의 상황을 통해서
제1권(1편, 2편)은 현명한 군주의 도리를 말한다. 배는 군주요 물은 백성으로 물은 배를 띄우지만 뒤집을 수 있으므로 민의를 살펴 겸손과 인의로 행한다. 제2권(3편~5편)은 군주는 간언을 통하여 스스로 살핀다. 제3권(6편~8편)은
1) 배경 : 지방호족들과의 연합을 통해 수립된 고려왕조는 호족들의 독자적 세력과 이와 결탁한 외척세력의 위협을 받고 있었다. 왕의 장인이었던 왕규의 난이 그 대표적인 사례였는데 이에 이들 세력을 꺾고 왕권을 안정시키고 강화시킬 필요가 대두되었다. 고려의 제 4대 왕인 광종(949-975)이 이를 추진
왕규의 난과 같은 난을 겪게 된다.
신라하대로부터 유교는 정치개혁의 이념으로 부각되기 시작하여 신라의 골품제도가 붕괴되고, 불교계의 새로운 경향인 선종의 유행은 고려 사회의 특징적인 일면을 보이기 시작한다. 이와 같은 요인들은 생활용기로서의 고려청자 발생에 새로운 배경이 되었을 것이
왕규(王規)의 반란, 왕식렴(王式廉)의 군대를 이용한 정종의 즉위와 서경(西京)천도 추진 등은 왕권의 불안정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그리하여 뒤를 이은 광종은 강력한 왕권확립을 위해 과거제도의 채용과 노비안검법(奴婢按檢法) 실시, 공복(公服) 제정. 독자적인 연호의 사용, 훈신 숙청을 통하여 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