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시초가 된다. 상류계급의 자제들만이 입학할 수 있는 귀족학교였으며 태학에서 교육을 담당한 교수는 소형(小兄) 이상의 관등을 가진 사람이 태학박사로 임명되었다. 고구려에서 최고의 학식을 가진 인물이 선별되어 경학(經學)·문학·무예 등을 가르쳤다. 고려시대에는 국자감(國子監)의 한 분
교육 목적으로 하던 국가 최고의 교육기관으로 성종 11년(992년) 개성에 설립되었다.
(1) 국자감이 고려 최초의 중앙 최고의 교육기관으로는 볼 수 없는 이유
첫째로는 태조 13년(930년)에 태조 왕건이 서경에 가서 학교를 창설하고 따로 학원을 창설하였는데, 뒤에 태조가 그 학교가 흥한다는 소식을 듣
교육기관이 있었던 것이 분명함.
성종 8년(989년)에 ‘태학조교 송승연을 국자박사에 임명하였다.’라는 기록되어 있음.
(2) 국자감의 제도
국자학·태학·사문학의 3학체제.
각각 박사와 조교를 두어 교육을 맡게 함.
문종 때, 국자학·태학·사문학·서학·산학의 5학체제로 변경.
각각 박사 2
제도적인 뒷받침으로 교육시설인 학교를 설립하게 되었는데, 소수림왕 2년(372)에 중앙에 태학을 설치하여 관리들에게 유학을 가르쳤으며, 평양천도 이후에는 지방에 경당이 설치되었다.
- 동양 : 왕에 의한 국가 경영 → 통치요원이 중시
- 고대국가형성 → 통치요원육성 → 태학(대학기관)
교육과 현대공교육제도의 비교
1)조선의 교육교육의 주도: 국가. 교육비 부담: 중․고등교육의 교육비 교육 대상: 원칙적으로 양반. 정규의 교육과정: 존재. 위계에 의한 학교제도: 중등과 고등교육만 연계. 전문적 교사: 존재
2)현대 공교육제도교육의 주도: 국가, 국가 부담: 기본적으로 초등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