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창령 < 규원 >
Ⅰ. 작가소개
왕창령은 측천무후의 말기(698년)에 태어나 현종의 통치 기간이 끝난 직후, 즉 안녹산의 난이 발생한 직후(756년 혹은 757년)에 사망한 인물이다. 자는 소백(少伯). 왕창령이 활동했던 태종 때부터 현종 때까지는 당나라의 황금기였다. 문학적인 측면에서도 당나라는 축복
1. 변새시란?
중국문학 일반에서 말하는 변새시란 변경지역의 風光과 그를 통해 느낀 감회,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는 사람들의 풍속과 생활, 그리고 從軍길에 오른 병사들의 고충과 정서, 전쟁 들을 제재로 지은 시를 포괄적으로 칭하는 말이다. 이러한 변새시는 시의 제재로 따지자면 <詩經> 시대
육조 이후 과도기적인 통일 왕조 수를 거쳐 새로운 제국을 이룬 당대의 시는 고병高棅의 [당시품휘唐詩品彙]에서 초, 성, 중, 만당으로 나눈 대로 시기별로 290년간 다양하고도 풍부한 발전을 하였다. 당초의 시풍은 심전기(약656-714), 송지문(약656-712) 및 초당사걸 등이 주도하며 오칠언 절구와 율시의 형
15年(727) 進士에 급제한 후, 秘書省의 校書郞에 임명되었으며, 開元 22年에 博學宏詞科에 응시하여 氾水(河南省 成皐縣)의 尉로 옮겼다. 바로 校書郞에 재직한 기간에 宮怨詩를 창작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왜냐하면 그가 校書郞에 재직한 것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폄적 당해 지방관으로 재직했기 때문이
왕창령이 궁정여인이 감상을 노래한시 <장신추사>를 묘사하여 매우 큰 성공을 거두었다. 작품으로는 <괵국부인유춘도>와 <도련도>가 송대의 모본으로 전해져오며 <귀공자야유도>,<궁중칠석걸고도>,<안락시녀도>등이 있다.
1-1. 장훤의 주요작품
<괵국부인유춘도>, 비단바탕에 채색, 송대에 모사되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