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팔렌조약으로 끝을 맺은 30년전쟁은 16세기 유럽 내에서의 첨예한 갈등상황이 결국은 전쟁으로 표출되었고,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종교적인 문제들을 새로운 질서로 나아가기 위한 단계라고 볼 수도 있다. 또 30년전쟁으로 인해 기존의 유럽의 질서가 변하였고, 베스트팔렌의 조약으로 루터
전쟁으로 확산되었다. 1648년에 전쟁은 종결되고 베스트팔렌조약이 체결되었다. 이 조약으로 루터파 이외에 칼뱅파도 카톨릭과 동등하게 인정되고, 스위스와 네덜란드의 독립이 국제적으로 인정되었다. 그리고 프랑스는 알자스 로렌 지방을 얻게 되었다. 30년전쟁은 독일에 큰 피해와 타격을 가하였다
전쟁에서 뛰어난 공을 세워서가 아니라 보헤미아에서 가장 많은 토지를 소유한 발렌슈타인이 황제를 대신해 자신의 비용을 들여 2만 4천만 명의 군인들을 모병하겠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30년전쟁이 중반에 접어들면서부터 처음에는 소규모 전투였던 것에 비해 전투의 규모는 상당히 커졌다. 또한 군
전쟁의 범위는 더욱 확대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유인 즉, 보헤미아 사람들은 개신교 연합의 지도였던 프리드리히 4세의 아들을 보헤미아 왕으로 추대했기 때문이다. 이에 황제 페르디난드 2세는 카톨릭 연맹이 함스부르크가에 할 수 있는 조력에 관해 토의 함으로써 1619년 10월 8일 뮌헨조약을 체결하
베스트팔렌(Westfalen) 지방의 토이토부르거발트(Teutoburgerwald)에서 로마 군대를 대패시켜 로마 제국의 게르만 민족에 대한 정책을 전면적으로 수정시켜 놓아, 로마 황제는 엘베-다뉴브 강의 경계가 아닌 라인-다뉴브 강을 경계로 제국의 영토를 다시 후퇴시켰다. 그 결과 게르마니아 지역은 로마 문화의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