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
고려는 부여에 기인한 나라로 평양성을 도읍으로 삼았는데, 위치는 한나라 낙랑군의 옛 땅으로 장안의 동쪽 5천 1백리에 있었다고 한다. 그 영역은 동으로 바다를 건너 신라에 이르고 서북쪽은 요수遼氺를 건너 영주營州에 이르며, 남으로 바다를 건너 백제에 이르고 북쪽은 말갈에 이르니
말해준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이야기는 훨씬 생동감 있게 다가오며 신뢰가 든다. 음식과 음악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더없이 즐거운 내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 글 중간중간 있는 사진 또한 그곳의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다.
셋째, 그는 이곳에 와보라고 권유하지 않는다. 단지 그가 살았던 곳의 풍경, 사
나누어서 진행하였다. 첫째로, 안정복이 살았던 조선후기의 역사흐름과 인식을 정리하여 동사강목의 사학사적 위치에 대해 논해보고, 둘째로 안정복의 생애를 알아봄으로써 그의 동사강목 저술동기에 대해 검토해보고, 셋째로 동사강목의 체계와 주요내용을 통해 의의와 한계를 알아보고자 한다.
역사적 과거를 보여주는 것과는 상관이 없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역사도 사진과 마찬가지로 과거 그 자체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역사에도 과거의 사실들을 특정한 시각으로 묶어내는 내러티브의 구성이 있는 것이다.
≪ … 중 략 … ≫
Ⅲ. 사진의 본질
사진은 말이다. 즉, 사
말을 표기한 문헌자료로서 [삼국사기] 권 35, 37에 나타난 고구려 지역의 땅이름 자료들을 주된 분석대상으로 삼았다.
고대 국어를 연구하는 데는 무엇보다도 자료의 특수성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분석이 필요하다. 고대인들은 한자를 가지고 우리말을 표기하기 위하여 월의 순서를 우리말 순서에 맞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