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월남전쟁은 내전이 아니다. 월남전은 자유 월남을 비롯한 동남아 지역을 적화할 것을 목적으로 자행된 공산주의 전략의 일환이었다. 북한의 예에서도 볼 수 있듯이 공산주의자들은 자기의 세력을 어떤 지역에 확대하고자 하는 경우에 먼저 상대방에 속하고 있는 약한 지점에다가 내란을 일으켜서
공산 게릴라 단체를 조직해 캄보디아 국경지대와 메콩 델타 그리고 중부고원지대에 이들을 대거 남파 했다. 이들은 농촌에 잠입해 젊은이들에게 사회주의 사상을 유입시키는 한편, 이들을 베트콩 전사로 양성해 게릴라 전술을 벌였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사이공에서는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정
전략적인 표적에 대한 공격을 공공연히 주장했다. 그러나 맥아더 장군의 이와 같은 행위를 군통수권자인 대통령 자신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한 트루먼 대통령은 1951년 4월 11일 맥아더 장군을 모든 직위에서 전격 해임하고 리지웨이 장군을 그 후임으로 임명했다. 이때부터 UN군 측과 공산군 측은 전쟁의
전략무기의 개발에 주력하고 있으며, 북한은 중국식 인민전쟁전략과 소련의 현대전략,6․25전쟁의 경험과 월남전 및 걸프전의 교훈 등을 복합해 독자적 군사전략을 발전시켜 왔다.
북한의 군사전략은 공세전략개념으로 유사시 전력전 형식의 속도전으로 한국내의 전지역을 단시일내에 석권하거
전쟁이다. 베트남의 독립을 위해 프랑스와 벌인 제1차 인도차이나전쟁(1946〜1954)과 구분해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이라고도 하며 ‘월남전(越南戰)’이라고도 한다. 남베트남 정부가 붕괴된 1975년 4월 30일까지 지속되었다. 초기에는 북베트남의 지원을 받은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과 남베트남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