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사상의 우월성을 의심치 않았으며, 그에 대한 자긍심도 결코 잃지 않았다. 그 점에서 증국번은 중체서용론, 즉 중국의 전통적인 가치와 윤리, 사상을 기본 틀로 삼고 그에 보태어 서양의 문물제도를 선택적으로 수용한 선구 격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역시 현재 관점으로는 사상적 개혁까지 동
유교의 중심적인 명제(命題)들을 다시 해석한다. 이(理)라는 관념의 세계로 해석한 주자와 달리, 실행과 실천이 가능한 실학적 사고로 새로운 경전 해석을 시도한 것이 다산의 경학이었다.
(2) 경세학(經世學), 사회 전반에 걸친 개혁사상
경학과 더불어 다산의 중심과제인 경세학은 당시 사회현
유교의 교조주의가 고개 들었고, 정치에서는 당론이 심화되었고, 사회에서는 사회혼란과 민생고가 매우 극심해졌고, 신분제도에서는 서얼금고가 더욱 더 가혹해졌다. 허균은 이런 모순의 시대에 살면서 개혁의 의지를 굳혔고, 개혁사상을 말했으며, 때로는 권력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몫을 맡기도 하였
공통된 목표를 지향하며 역사적 전환기를 맞이하였다. 이러한 많은 변화와 더불어 개화기를 통해 교육시스템에 많은 변화가 있었으며 이 글을 통하여 어떠한 학문이 조선시대의 유교를 대체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교육 근대화의 진행은 어떠하였는지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