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과 주례를 바탕으로 하여 역성혁명을 이뤄냈다. 조선건국 후에는 군대를 정비하고 통치조직의 목적과 제도를 설계하면서 제대로 된 국가와 정통적 유교정치를 제도화시키는 기초를 마련하는데 진력했다. 이와 같은 점을 바탕으로 여기서는 삼봉의 조선조의 제도정치의 기틀이었던 성리학을 기본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8세기 후반부터 정치․사회․경제․사상 등 전반적인 변화가 오고 있었다. 예컨대 골품제도의 동요로 연속적인 왕위의 쟁탈전과 지방반란이 일어났고, 9세기에는 극심한 천재지변, 진성여왕의 실정과 농민봉기, 6두품집단의 유교정치사상의 진흥과 반신라적 동향 등이
(1) 고려시대의 풍수사상
고려의 태조 왕건 은 지방 호족의 기반에서 출발하여 국왕이 되었기에 호족세력의 통합을 추진시키게 됨에 이르러서 새로운 정치사상을 요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태조는 이러한 필요에 의하여 국왕으로 유교적 정치사상에 입각하여 국가의 건설방향을 제시하는 한편
그
유교정치사상으로 국민을 교화하며 나아가서 과거 준비를 통하여 유교이념으로 도야된 신진인사를 국가 관인으로 충원하여 왕권의 충복으로 순치하여 정권을 안정시키는 것이 과거제의 목적이었던 것이다. 광종은 국초에 지방에서 할거하여 득세하였던 무인호족세력을 억압, 약화시키고, 그들이 자
유교정치사상사의 맥락에서 붕당은 당초 부정적인 금기의 대상이었다. 중국의 경우 전국시대(戰國時代) 이전까지는 붕당을 막아야 한다고 주창될 정도였으며, 통일 전제국가가 성립된 한(漢)·당(唐) 시대에는 정치는 군왕(君王)의 전관사항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어서 붕당을 죄악시했다. 그러나 송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