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鄭道傳, 1342~1398)은 정치적으로 역동적인 생애를 살았다. 비판적 이성과 개혁에 대한 원대한 포부를 가졌던 정도전은 권력의 핵심요소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그가 고려말기에 개혁하기 위한 힘의 요소로 주목한것은 “군대와 토지 그리고 이념”이었다. 이재석 외, 『한국 정치사상사』, 집
무신란 이후 고려 말에 이르는 시대적 상황은 대·내외적으로 위난이 점증되는 시기였다. 정치기강의 문란, 사회적 윤리의 이완, 국가재정의 파탄, 국방력의 약화, 사상계의 침체와 그 사회적 역기능 그리고 원의 멸망과 명의 발흥 등 긴장과 혼란이 연속되는 시기였다. 이러한 시대에 있어서 정도전과
정치를 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첫 번째 항에서는 계통을 중시해 인효를 온전하게 할 것을 말하고 있다. 효는 백행의 근원이고, 인은 만 가지 선의 장이라고 말하며 이 둘을 모든 것의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두 번째 항에서는 특이하게도 환관과 여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당시 궁전 안
정도전은 자신의 생각을 숨기지 못하는 데다 날카롭고 불같은 일면이 있어 항상 주위로부터 공격을 받기 쉬웠는데, 그는 스스로 이 점을 인정하면서도 평생을 투지와 용기로 일관하며 살았다. 또한 무슨 일이든지 끝까지 관철하는 강인한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스승이었지만 훗날 정치적으로 그와 날
정치적 분위기를 새롭게 하고자 하는 것이 전반적인 흐름이었다. 이러한 가운데 성균관 유생들의 천거와 이조판서 안당(安塘)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1515년(중종 10) 조지서사지(造紙署司紙)라는 관직에 초임되었다. 그해 가을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전적, 감찰, 예조좌랑을 역임하게 되었고, 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