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달밤을 타서 성 밖 수십 리를 돌며 발을 덥혔다. 건륭 19년(1754) 궁색하고 영락한 가운데 양주에서 54세로 죽었다.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곤궁한 유학자로 전락한 오경재는 세태의 변천과 인심의 간교함을 깨달았고, 이는 유림외사를 창작하는 데 기초를 제공했다. 가정의 몰락과 그 자신이 겪은
밀치고 엎어지고 자빠지고 하였다. 포정새는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다. 어느 동생이 뒤를 보러 간다고 핑계대고는 찰원토담 밑으로 가서 토담에 구멍을 뚫고 그리고 손을 내밀어서 문장을 받다가...’
이렇게 맹목적으로 팔고문을 중시하는 과거제도는 지식인들에게 보수적인 사고와 사상을 조
儒林外史는 18세기 중국 소설계의 걸작이자, 중국 소설 역사상 불후의 풍자소설.
유림이란 독서인의 총칭이고, 외사는 정사 외의 사실기록을 뜻함.
유림외사는 전체를 일관하는 줄거리는 없고, 독립된 이야기를 사제간 친구간 등의 관계를 가진 주인공의 교체로 열전식으로 구성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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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청대 문인사회에는 다른 문화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남색이다. 이 같은 현상은 꽤 오래 지속되었는데, 어린 미소년에 대한 성애적 열광은 상상을 초월했다. 당시 주루와 극장 안은 술자리 시중을 들며 노래하던 수많은 미소년들이 넘쳐났다. 명대 말기에는 남성이
고전의 조건은 무엇일까? 많은 조건들이 따르겠지만 그 세부적인 조건들을 열거하기에 앞서 ‘교훈’적이지 않은 것은 고전이라고 할 수 없음이 분명하다. 교훈을 주기위해서는 현실적이든 그렇지 않든간에 내용이 쉬어야 할 것이다.
포송령의 『요재지이』는 민간에 전해오는 이야기를 바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