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이다. 죽음의 설정은 강인한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절망적인 현재의 역설이기도 하다. 정철의 창평 시절은 그만큼 괴롭고 절망적인 나날이었던 것이다. 「사미인곡」은 송강 자신이 설정한 당위의 세계-경국제민의 이상실현-가 좌절되자 어쩔 줄 모르고 허둥대며 그 당위의 세계를 회복시켜
가사(歌辭) 혹은 가사(歌詞)라는 명칭이 문헌에 나타난 시기는 16세기 후반부터이기 때문에 조선조 후기에 나타난 명칭이라고 해도 좋겠지만 가사의 범주에 넣을 수 있는 작품은 그보다 훨씬 앞선 시기에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가사의 발생은 크게 두 가지 견해가 있는데 고려 말에 가사가 발생했다
연에 묻혀 심성을 수양하며 살아가는 유학자의 모습이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작품은 자연(우주적 질서)과 자아의 조화로운 합일을 추구하는 높은 정조를 띠게 되었는데, 이러한 서정적 정조는 이 시기 가사를 특징짓는 중요한 요소이다.
조선후기가사는 담당층이 다양해지면서 작품의 경향도 다양
되기도 하였다.
가사는 문학양식으로서의 그 이름도 여러 가지로 표기되어 사용되고 있다.
가사의 내용을 시대별로 대별해 보면 산수자연을 나타낸 것, 연군의 정을 그린 것, 유배의 울분을 엮은 것, 전하의 참변을 노래한 것, 기타 불교의 도덕관, 여정 등을 노래한 것들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가사는 시조와 마찬가지로 발생 초기에는 주로 양반사대부의 전유물이다시피 하다가 조선후기에 이르러서는 작자층의 확대가 이루어져서 서민층과 양반의 부녀자층까지 가사를 짓고 즐기게 된다. 또한 개화기를 전후해서는 여러 지식인들이 자신들의 생각과 주장을 가사를 통해 개진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