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임진왜란, 그 혼란기의 광해군과 인목대비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였다. 당시 조선의 왕은 14대 임금인 선조였다. 선조의 즉위는 16세기 초반 이래 지속되어온 훈구와 외척들의 척신 정치가 끝나고, 척신정치 시절 박해를 받았던 사림파들이 대거 조정에 진출하면서 바야흐로 정치판이 물갈이를
유영경(柳永慶)을 독약을 내려 죽게 하고 영창대군을 서인으로 만들어 강화도로 유배 보내고 종국에는 강화부사(江華府使) 정항(鄭沆)으로 하여금 영창대군을 불에 타서 죽게 하는 등 소북파를 몰아낸 사건이다. 이 사건이 계축년(1613)에 일어났기 때문에 계축화옥 또는 계축옥사라고 한다
가 일어나고
임진왜란과 광해군의 세자책봉
광해군은 출생 순으로 보면 선조의 둘째 아들이다. 게다가 후궁에게서 출생한 서자였다.
서자 그것도 둘째아들에 지나지 않던 광해군이 세자로 책봉 된 것은 임란이라는 비상사태 때문이었다.
임란이 발생하기 직전까지 선조는 왕위에 오른 지 20여년이 되었는데
유영경이 임해군을 위하여 광해군 세자 책봉을 주청하지 않으니 유영경의 머리를 베소서."
상감의 뜻에 거슬리는 이 상소는 그지없이 광포한 것이었다. 상감께서는 이 상소문을 보시고 인홍 등을 귀양보내라고 전교하시고 운명하셨는데, 승하하실 때 광해군에게 다음과 같은 유교를 내리셨던 것이다.
내렸으나 소북파의 유영경이 이를 감추었다가 대북파의 정인홍 등에 의해 음모가 밝혀져 왕위에 즉위하자 임해군을 교종에 유배하고 유영경을 사사하였다. 그는 당쟁의 폐해를 막기 위해 이원익을 등용하고 초당파적으로 정국을 운영하려 하였으나 대북파의 계략에 빠져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