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귀비는 한 부인으로 원래 식견이 없고 성의를 거역하여 죄가 응당 죽어야 하는데 단지 이미 총애를 입어 궁중에 죽게 해야 하니 폐하께서 어찌 궁중에 한 자리를 아까와하십니까? 그녀에게 죽으라고 하면 반드시 그녀를 외부에서 모욕받게 하면 안됩니다.”
玄宗不禁點首。
현종불금점수
모두 5만여 수에 달하는 당시(唐詩)는 기원전의 주나라부터 남북조시내까지의 1천6백여 년 동안 생산된 시가 보다 양적으로 두세 배가 될 뿐 아니라, 질적인 면에서도 다양성과 창조성이 그 어느 시대보다 풍부했다. 이렇듯 화려한 당대에 활약했던 이백과 두보야말로 각기 개성과 업적을 남긴 중국의
안 들다 ② (어떤 사물에까지) 눈이 미치지 못하다 ③ (보려고 해도) 볼 수 없다 ④ 경멸하다 ⑤ 얕보다
건녕왕 이담은 평소 성격이 정의감이 있어서 장양자등 사람을 경멸하여 일찍이 사적으로 이필에게 말했다. “선생께서는 저 이담이 병권을 장악하게 천거해 신하와 자식의 정성을 다하게 하여
안주하고 특히 아들의 비(妃)였던 양귀비를 후비로 맞으면서 점점 정치에서는 멀어지게 된다. 이런 속에서 안․사의 난은 일어나게 되고, 그 때문에 당현종은 이전 ‘개원의 치’의 태평성세를 이룬 성군이기보다는 여색에 빠져 정치를 등한시했던 황제로 우리들의 기억에 남게 된 것이다. 이처럼
겸함
751년, 남조와의 전쟁에서 약 6만의 군사를 잃고 패함
752년, 우상(右相)이 되어 40개의 관직을 독식함/최고의 명예직인 국공(國公)에 오름
754년, 남조와의 전쟁에서 약 14만의 군사를 잃고 패함
755년, ‘안사의 난’ 발발. 안록산은 ‘양국충 토벌’을 목표로 함
756년, 병사들에게 살해당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