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이 현실보다는 일상을 벗어난 환상의 세계를 묘사하는데 주력했다면, 두보는 보다 현실적인 소재를 보다 현실적인 기법으로 표현했다. 이러한 대조적인 성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두 시인은 서로 끈끈한 교분을 지니면서 지냈다.
이처럼 당시(唐詩)라고 하면 으레 이백과두보를 첫손으
시가 하나의 시형으로 정해진 시기이기도 하였다. 댓귀의 기교도 한층 발달하였다. 궁정에서 열린 콩쿠우르와 문관임용시험의 1과에서는 시와 부를 과제로 하였다. 작시법의 규칙은 이 두 가지에서 비롯하였다.
710년 - 765년에는 성당이라 부른다. 당대에서 가장 뛰어난 시인 이백, 두보를 비롯하여 잠
시대에 따라 변천하는 것, 궁중의 그녀의 경쟁자가 '뚱뚱보 계집'이라고 불렀다 하니, 그녀는 당삼채 도용에서 보는 것처럼 풍만한 미인이었던 것 같다. 그녀에 대해서는 고아 출신이었다고도 하고, 이백의 시에도 등장하듯이 당시 장안에는 서역의 미인들이 들어와 있었다 하니 그녀 또한 서역 계통이
시/고체시이다
- 이런 사실은 두보가 근체시 특히 율시를 잘 지었던 것과 대조를 이룬다
- 이것은 이백이 즉흥적이고 순간적으로 시를 지어낸 경우가 대부분이고 주제와 시상도 파격적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까다로운 율시에 불편을 느꼈으리라 생각된다
ㆍ다양한 시세계와 뛰어난 시적
1. 서론
당대를 대표하는 대표적인 두 시인이 이백과두보라고 해도 틀린 말이라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백은 낭만주의의 계보를 잇는 시를 많이 썼으며 두보는 나름대로의 눈을 통해 비쳐진 사실주의의 시를 많이 썼다. 시선(詩仙) 이백(李白)과 시성(詩聖) 두보(杜甫)는 생애 두 번 만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