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는 도일 수속을 위하여 성씨를 히라누마라 창씨하게 된다. 창씨계를 제출하기 5일 전인 1월 24일의 시작품 「참회록」은 고국에서 쓴 마지막 작품이 된다. 참회록은 일제가 강요하는 창씨개명에 굴복한 자신을 참회한 것이다.
1942년 4월 2일, 윤동주는 동경 입교대학 문학부 영문과 선과에 입학하
1. 시인 개인의 삶
(1) 윤동주의 삶 -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윤동주는 자신을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내몰고,/時代(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最後(최후)의 나>라고 표현했다. 그는 시대의 어둠속에서 <이 지나친 試鍊(시련),이 지나친 疲勞(피로)>를 온몸으로 견디며 책을 읽고
시」
그 부끄러움의 미학은 자기 혼자만 행복하게 살 수 없다는 아픈 자각이 표현이다. 1941년 일제치하에서 이런 각오의 시가 씌어질 수 있다는 것은 하나의 기적이다. 또한 강한 자기희생과 굳은 결의 뒤에는 옳은 일을 하면 틀림없이 살아남는다는 기독교적 확신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런 그의 자각은
문학부 영문과 입학, 10월 경도 동지사대학 영문학과 전입학
연희전문 졸업 후 일본 유학 결정, 히라누마(平沼)로 창씨개명 신청하기 1개월 전 고국에 서의 마지막 작품 <참회록>을 씀
- 1943년(27세) 7월 14일 교토 시모가모 경찰서에 독립운동 혐의로 검거
- 1944년(28세) 윤동주, 송몽규 징역 2년 언도,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