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보냈음에도 이렇다할 저항 시인을 갖지 못한 우리 문단 현실에서 그의 감옥에서의 죽음은 여러 가지 요소를 충족시키기에 적합했다는 점이다. 오세영은 이런 근거를 들면서 윤동주 연구는 이제 냉정한 객관성위에서 새로 시작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시인들의 자기 작품에 형상화한 주제는 그
Ⅰ. 윤동주의 사상
한국 현대문학사를 통해 볼 때 윤동주처럼 빛나는 시인은 드물다. 그는 민족주의 시인이자 기독교적 시인으로 두 가지 관점을 가지고 시를 썼다. 우리나라 시의 흐름을 볼 때 민족의 식을 고취한 시인은 몇 있었지만, 민족주의와 함께 기독교 의식의 두 가지 관점을 갖고 시를 쓴 사
시인이다. 그가 옥사하고 3년뒤에 나온 유고시집(遺稿時集)은 그가 연희전문 졸업을 기년하기 위하여 뜻깊게 남긴 자필시고(自筆時稿) 3부 중에서 1부를 유일하게 보관하던 친구 정병욱과 아우 윤일주에 의하여 『하늘과 바람과 별의 시』로 출간 되었다. 윤동주는 대부분의 작품마다 작품의 연대를 적
시대에 살아 남았다는 것과 그가 시인으로서 무엇을 어떻게 했느냐 하는 문학적 업적과는 별개의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암흑기의 문학을 정리해 본다면 그는 그 시대의 문학의 사명을 거의 유일하게 마지막까지 짊어지고 나간 시인임을 알게 된다.” 1)
“...윤동주 체포의 사유가 된 ”사상 불온, 독
시를 빠짐없이 발표했다고 한다. 명동 소학교 5년 과정을 수료하고 중국인 소학교 6년 과정에 편입하여 1년간 더 수업하였고 다음 해 용정의 은진 중학교에 입학하였다. 달라진 무대에서 동주는 순수한 뜻을 펴갔다. 먼저 급우들과 함께 교내 문예지를 발간하여 문예 작품을 발표하는 한편 축구 선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