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병전쟁은 실패한 전쟁이 아니라 민족사 발전의 기반을 형성한 발전적 개념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실패한 역사로 치부되어서 안 된다는 말이다.
근대 제국주의 침략 속에서 전개한 반제국주의적 독립운동일 경우, 혹은 봉건체제에 대한 혁명운동일 경우, 어느 역사적 사건도 단번에 목적을 달성
의병전쟁은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일본에게 패하고 말았다. 결국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버리고 36년간 통치를 받았지만, 우리는 의병들의 정신을 배울 수 있었던 역사적 사건인 것이다.
지금부터 의병전쟁이란 무엇이며, 의병전쟁이 일어나게 된 배경과,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또
의병전쟁이 전국적으로 급격히 확산 고조되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 서울 시위대 대대장 박승환의 자결로 비롯된 군인들의 저항은 원주, 여주, 강화, 진주, 평양 등 전국적으로 파급되어 갔다. 이들이 해산을 거부한 채 그대로 의병으로 전환됨으로써 의병전쟁에 강력한 힘을 실어줄 수 있었다. 해산
Ⅰ. 개요
농민전쟁의 실패 후에 전개된 민중운동- 농촌에 근거를 둔 농민층의 항쟁(민란), 농촌에서 배제된 무장농민군의 항쟁(영학당, 활빈당), 그리고 초기 노동자의 항쟁이 궁극적으로 의병전쟁으로 결집되었고 의병전쟁은 단순한 반일운동이 아니라 반제 반봉건 지향하는 민중층의 변혁운동이었
의병부대에 편입, 혹은 독자적 의병부대로 조직되었다. 의병의 전투력 크게 증강되고 농민층, 포수, 노동자들의 의병참여가 활발히 전개되었다. 의병의 활동지역은 1907년 이후 서울을 중심한 경기, 황해, 충북, 강원, 경북 외에 전남북, 함남까지 확대되었다. 의병전쟁은 전민중적 차원으로 확산되고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