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에 진입하면서 독립을 약속했다. 물론 약속을 이행할 의사는 전혀 없었다. 오히려 가혹한 조세정책과 토종산업 말살 등 영국의 폭정이 극심해지면서 독립 약속을 기억하고 있었던 이라크인들은 1920년 대대적 폭동(아랍민족 무장운동)을 일으켰다.
이에 대한 영국의 대응은 가혹했다. 몇 달 만에
미국이 오랫동안 한국군의 추가파병을 요구하였건만 우리는 국론이 통일되지 않아 이것저것 고려하다가 기대보다는 늦게 파병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총선이 끝나자 이라크 추가 파병 문제가 뜨거운 현안 문제로 대두되었다. 특히 소장파 의원들을 중심으로 일단 파병시점과 파병지
운동의 방향성도 이전보다 다양하고도 모호한 형태로 표출되고 있다.
이번 팀 보고서에서는 이 점에 주목하여, 2000년 이후 다양하게 나타나는 평화운동의 갈래로 ‘반전’과 ‘반핵’을 설정하여 접근해보고자 한다. 구체적인 사례로는 ‘이라크전쟁’반대운동과 ‘북한 핵’을 둘러싼 반핵운동을
파병에 대한 찬반 논의가 전개되는 가운데...국회는 2003년 4월 2일 국회의사당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연설을 바탕으로 한 찬반 표결 결과, 과반수의 찬성으로 한국의 이라크파병안에 대한 처리가 이뤄졌다.
지난 2002년 여름부터 여중생 사고로 인해 시작된 반미, 반전운동의 물결은 국회의 파병안
머리말
바로 얼마 전 이라크전쟁이 끝났다. 미국이 주도한 이라크전쟁에 대해 각국의 많은 사람들이 반전운동을 벌여왔고, 우리 나라에서도 반전, 파병반대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사람들이 이렇게 열성적으로 전쟁을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전쟁으로 인해 무참히 짓밟히는 생명의 존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