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5만여 수에 달하는 당시(唐詩)는 기원전의 주나라부터 남북조시내까지의 1천6백여 년 동안 생산된 시가 보다 양적으로 두세 배가 될 뿐 아니라, 질적인 면에서도 다양성과 창조성이 그 어느 시대보다 풍부했다. 이렇듯 화려한 당대에 활약했던 이백과 두보야말로 각기 개성과 업적을 남긴 중국의
1. 이백 시의 매력은 어디에 있을까(35점)
이백은 성당시기의 낭만주의 시인이다. 그는 ‘開元의 治’라고 불리우는 성당시대에서 쇠퇴의 길로 치닫게 되는 원인을 제공한 ‘안사의 난’이 발발한 시기의 전후를 온몸으로 겪었다. 이백은 ‘濟蒼生’과 ‘安社稷’의 정치이상을 가슴에 품고 고향을
이백의 시에도 등장하듯이 당시 장안에는 서역의 미인들이 들어와 있었다 하니 그녀 또한 서역 계통이 아니었겠나 하는 이야기도 있다. 그녀는 본래 현종의 아들 수왕의 비였는데, 현종은 그만 그녀의 미모와 훌륭한 가무에 정신을 빼앗겨, 급기야 그녀를 여도사로 만들었다가 다시 궁중에 불러들여 귀
1. 이백의 생애
두보는 탄생이나 그 생애의 전기가 분명한 데 비하여 이백은 그의 출생부터 애매하다. 다만 그의 시 내용이나 소재를 통하여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으나, 본래 자유분방한 인물이기 때문에 그것도 전적으로 믿을 수 없다.
이백은 방랑시인이다. 21세에 집을 떠나 62세에 객사(客死)할
1. 서론
당대를 대표하는 대표적인 두 시인이 이백과 두보라고 해도 틀린 말이라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백은 낭만주의의 계보를 잇는 시를 많이 썼으며 두보는 나름대로의 눈을 통해 비쳐진 사실주의의 시를 많이 썼다. 시선(詩仙) 이백(李白)과 시성(詩聖) 두보(杜甫)는 생애 두 번 만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