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전으로 진행되는 유생대회에 참가하라는 일본 경찰의 요구에 반대하였다는 죄목으로 구금당하는 수난을 스스로 달게 받는 지경에 이른다. 이처럼 일제에 대하여 비타협적으로 살아온 그가 지니고 있는 미래에 대한 역사적 전망은 과연 어떠한 것인가는 현과 나누는 대화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앞으로 전개된 상황변화에 적극 대처할 수 있는 자리를 선점하고 나섰던 것이다. <문건>은 곧이어 <조선문화거설중앙협의회> (이하 <문협>으로 줄임)로 명칭을 바꾸면서 일제하 순수문학 진영의 대표격이었던 이태준을 포섭한다. 이 부분에 대한이태준의 회고는 「해방전후」에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원을 만나 교우한다.
마침 문인 보국회에서 주최하는 문인 궐기 대회에 참석은 하지만, 자신이 연설할 차례가 다가오자 대회장을 빠져 나온다. 일제(日帝)도 길어야 1년이라는 생각에 갈피를 못 잡는 그는 자신의 문학을 반성한다. 이럴 즈음 주재소에서는 출두를 명령하여 각종 시국 집회에 참석하지
자신의 과오를 덮으려는 과장된 제스처에서 나온 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이태준은 1942년을 전후로 하여 친일적 글쓰기 이태준, 「지원병 훈련소의 일일(志願兵 訓練所의 一日)」, 『문장』20집, 1940
이태준․이무영 공저, 『대동아전기(大東亞戰記)』, 인문사, 1943
를 하였으며, 이
조선문학가동맹은 내부 알력으로 심한 몸살을 앓는다. 결국 프롤레타리아가 조선 혁명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는 주장을 펴는 ‘프로문맹’ 문인들이 대거 월북하는 사태로 불거지면서 일시적 봉합은 깨지고 만다.
Ⅲ. 이태준의 작품세계
1. 이태준문학의 시기구분
상허 이태준은 신경향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