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기의 경우, 조선인 자본가 중 예속자본가를 제외한 자들만이 민중이 중심이 된 민족해방운동 차원에서 견인되어야 할 존재로 고려되었다. 이승렬, 「일제시기 민족자본가 논쟁」, 『역사비평』(계간 9호), 1990 여름.
식민지근대화론은 “한국경제의 발전방향은 자본주의적 발전밖에 없다” 안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대중 강좌 등 각종 대중 사업을 통해서도 사회에 상당한 지명도를 확보하게 되었다. 다른 사회과학 쪽의 진보적 학술단체들이 1990년대에 들어와 크게 흔들리고 약화되었던 것에 비하면 역사학 쪽의 단체들은 상대적으로 안정되고 활발한 모습을 보여왔다고 할 수 있다.
역사학 등 다양한 분야의 실증주의자들이 모인 단체였다. 진단학회가 조선인이 주축이 되어 만든 최초의 학술 단체라는 점과 실증을 우선시함으로서 학문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 세련성을 기할 수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진단학회가 학술사적으로 가지는 위치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해방 이후 그
제1장. 서론
레오폴트 폰 랑케, 그는 독일의 역사학자이며 사료에 대한 엄격한 비판과 역사가의 객관적인 서술을 강조하였으며 근대 사학을 확립하여 근대 역사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는 근대 역사학의 아버지라는 명성에 맞게 후대 역사학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으며 수많은 역사학자들이 랑
과학화 할 수 있다는 신념의 표현이며, 이러한 면에서 실증주의자들은 윤리, 정치, 역사는 물론 심지어 종교까지도 과학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증주의에 비추어 봤을 때 우리가 실증주의 사학 또는 실증주의 사관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곧 역사학을 하나의 자연 과학으로 보려는 학문적 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