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략하자 미국은 1941년에 일본 제국에 경제제재와 석유 금수 조치를 취하고 이에 반발한 일본 제국이 진주만을 공격하면서 미국이 참전하여 1945년 8월 15일 일본 천황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기까지 태평양과 아시아의 영역에서 벌어진 전쟁을 ‘태평양전쟁’이라 한다.
전시(戰時)에는 ‘대동아 전
일본 국체의 근본적 변혁과 부국강병에 힘쓴 결과, 당시 동아시아 제국주의의 중심이던 영국과 1894년 청일전쟁 직전 불평등조약체계 철폐라는 성과를 달성하게 된다. 일본의 근대적 외교는 서구에 대한 양이론적 개국론의 연장선에서 발전한 것으로 청을 동아시아 중화질서의 중심이 아닌 쇠약한 부패
일본의 대소련 전략은 좌절되었지만 , 소련에 대한 시각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았다.
Ⅱ. 태평양전쟁의 경과
1. 전쟁 발발
1940년 초 전황이 독일에 유리해지면서 네덜란드와 프랑스가 패망하자 일본은 1940년 9월 독일․ 이탈리아와의 3국 동맹을 체결하고 국내 강경노선에 따라 일본은
감추기 위해 이같이 ‘민족운동가’ 운운하고 있는 것. ‘독립운동’이란 문구를 쓰지 않음으로써 항일투쟁을 축소·평가하여 교육시키려는 의도인 것이다.
⑷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전쟁(太平洋戰爭)은 아시아 제(諸)민족의 해방을 위한 성전(聖戰)?
* 야마가와 출판『고교일본사B』는 ‘대동아
전쟁의 개시(1937년 7월), 대동아신질서 선언(1938년 11월), 독일ㆍ이태리와의 삼국동맹(1939년 9월)이라는 태평양전쟁 돌입까지의 일련의 주요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군 주도의 군국주의ㆍ제국주의 팽창 정책의 첫 걸음이었다. 아시아 제패를 향해 돌진하는 이 시기 일본의 대외정책은 미일간의 무력 대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