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는 후쿠자와 유키치가 제창한 동양맹주론(東洋盟主論과) 탈아입구론(脫亞入歐論)이 등장하였는데, 동아시아의 전통적 중화주의 질서를 배격하고 근대 서구문명의 신질서에 동참하려고 했던 것이었다.
4. 청일전쟁과 일본의 동아시아 질서 재구축
메이지 유신 이래 일본의 외교는 크게 개
태평양연안의 유리한 전략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에 있어서 일본은 중국과 북한의 움직임을 감시할 수 있는 국사기지, 병참기지, 보급기지로서의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태평양전쟁 이후로도 미일관계가 우호적일 수밖에 없었는데. 이점은 후에 일본의 서구국가와
각 게이머들의 투쟁의 장이 된다. 이영형, 『동북아 국제관계의 지정학적 해석』, 동북아연구 제5권, pp. 251-252
이러한 공간에 대한 국제정치의 주체들 간의 행위를 연구하기 위해서 지정학이라는 분야가 탄생했고 국제질서 속의 ‘힘’의 대결구도를 분석하는데 있어 중요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전쟁이 발발했다. 미국의 도움으로 북한․소련․중공의 공산세력을 몰아냈으나 한반도는 아직도 정전체제로 분단되어 있다. 1990년 소련의 붕괴로 세계는 탈냉전국제체제에서 바야흐로 Pax Americana 시대를 맞이하였고 이러한 국제질서의 급변속에 북한의 핵문제로 한민족은 한국전쟁이래 최대의
일본을 강제로 개국시킨 서양오랑캐를 몰아내야 한다는 주장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존왕양이 사상은 막부를 타도하자는 토막운동으로 이어졌고 결국 260여 년간 계속되어온 에도막부는 멸망하게 되었다. 이는 곧 700여 년간에 걸친 무신정치의 역사가 끝남을 의미하기도 했다.
2) 메이지 유신